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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art

생각 보다 재미있는 서양 미술사 19세기 후반 3탄 -아르누보, 상징주의, 자포니즘

by Salon de arte 202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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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마지막 미술 양식들! 이 19세기는 정말 너무나 많은 예술 양식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참 흥미로운 시대였던 것 같아요

 

오늘은 아르누보 예술 양식부터 시작합니다. 

 Art and Craftmanship 19세기에는 빠르게 발전하는 산업화 시대에서 예술가들은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생산품들에 반하는 운동을 펼쳤는데 이 운동이 바로  art and craftmanship 이였답니다. 

이후 19세기에 유명한 독일의 한 상점 L'Art Nouveau에서 전 세계 있는 장식용품을 판매했는데요, 이러한 손으로 만든 예술적 장식용품들에 대한 것에서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고 이 가게는 이 아르누보에 중심 역할을 하는 상점이 되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이 모든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 장식 들을 아르누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이 아르누보 자체는 사실 가구나 건축물에 적용되는 디자인으로 더 많이 쓰였는데요. 이 아르누보는 로코코 양식 때와 비슷하게 고전적이고 역사적인 디자인들을 참고하면서도 자연물에서 비롯한 선, 곡선, 나뭇잎, 꽃 등등의 표현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 분야도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이 아르누보는 또한 스테인글라스나 모작, 나무 등등 표현방법도 엄청 다양했답니다.

 

 

가우디의 건물들이 아르누보를 참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물론 아르누보 양식은 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 특히 스페인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아르누보 양식을 띤 건축물들이 많이 보였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축가 한 명이 있는데요.

바로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입니다.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이 가우디에 대해 전혀 모르고 갔었다가 진짜 너무나 반해버려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답니다 

 

 이 가우디의 모든 건축물들은 아르누보의 형식을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담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랄까요?

 

왼쪽 카사바트요 오른쪽 사그리다 파밀리아

이 카사 바트요 같은 경우에는 발코니와 창문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인간의 뼈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가우디는 이런 자연물에서 특히나 영감을 많이 받아 이걸 그대로 건축물의 뼈대로 녹여냈답니다. 또한 건물 외벽과 

내부에는 모작 형태의 타일일 정말 아름답게 디테일로 들어가 있는데요 이것이야 말로 정말  craftmanship의 정석이 살아있네요. 

 

 

마찬가지로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여전히 미완성인데, 이번 코로나 때문에도 더 완성이 느려지겠군요 ㅠㅠ

자 아무튼, 가우디는 역사적 양식 고딕 양식을 참고해 이 성당을 완성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과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정교한 디테일이 특징인 아르누보의 정석을 달리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자세한 설명은 스킵할게요 -다음에 다시 한번 자세하게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ㅎㅎ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림, 너무나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프의 the kiss는 몇 안 되는 아르누보 화가의 작품인데요

The Kiss/Gustav Klimt / 키스/ 클림트 /  Belvedere, Vienna 

 

이 유명한 클림트의 작품은 몇 안 되는 아르누보 화가들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아르누보 자체는 장식적인 요소와 

이 손으로 만드는 장인정신이 깃든 가구나 장식품에 좀 더 치중되어 있던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이 아르누보를 사용한 그림을 많이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클림트는 여기 보이는 the Kiss에 여러 가지 재료 금색 잎, 은, 플레티늄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아르누보의 양식을 적용한 그림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사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아르누보 스타일 화가일 뿐만 아니라 19세기 후반 약 1859년 이후에 등장한 상징주의 (symbolism)을 대표하는 화가 이기도 합니다.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와 인상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미술 양식 중 하나로써,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한 예술의 형태입니다. 미술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미술 양식입니다. 

 

 

 

이 상징주의 자체는 어떤 뚜렷한 한 형태의 그림 양식보다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나 20세기 이후의 초현실주의 등등에 대체로 섞여서 나타난 미술 양식이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 고흐의 그림에서도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상태를 느낄 수 있는데요. 이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그림,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구스타프 모로의 그림들은 정말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Orpheus /Gustave Moreau  /오르페우스/ 구스타프 모로/ 오르세미술관

상징주의 화가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이나 보이지 않는 신을 형상화하거나 , 꿈이나 다른 영혼들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데에 집중했는데요. 당시에 어떤 종교적인 믿음이나 두려움 등을 시각화해서 그려내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 중 하나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인데요,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잘 연주하는 신이었는데 아내를 잃은 죽음으로 여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젊은 남자들이랑만 어울려 지냈다고 합니다. 이에 트라키아의 여인들이 자신들을 거들떠보지 않는 오르페우스에 분노하고, 결국 사지를 찢겨 죽게 됩니다.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안고 있는 이 여인은 트라키아의 여성중 한 명인데요 , 무언가 꿈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이러한 그리스 신화를 그림의 주제로 사용하는 것은 꿈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상상을 하는듯한 그런 느낌을 주기 적절한 주제였기 때문에 상징주의 화가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징주의가 유행하고 있었을 당시 이 서양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동양의 미술이 있었는데요,

 당시 여러 나라과 이 예술작품들의 교역을 활발하게 하고 있던 동양의 나라 중 하나 일본의 그림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이 양식을 Japonism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미술 양식은 18세기부터 다양한 화가들이 따라 했던 일본의 판화, 일본풍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1860년대쯤 엑스포를 열게 되고 그때부터 많은 일본풍의 그림들과 가구, 장식품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답니다. 

사실 이 서양에서 미술사를 배울 때는 여러 나라의 미술사를 배우긴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대한 건 많이 나와있는데 한국에 대한 미술사는 잘 나와있지 않더라고요. 그 점이 참 속상 ㅠㅠ

 

Claude Monet ,  Madame Monet en costume Japonais , 1875/ 클라우드 모네/ 모네 마담 모네 제페니스 코스튬 

바로 이런 일본의 화려한 옷 기모노와 동양의 그림풍인 아기자기한 배경들이 이 유럽 전역의 화가들을 사로잡아 기모노를 입고 꽃무늬가 화려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한 예술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재밌는 건 이 일본 그림들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닌, 그 일본풍의 그림을 예술 양식으로 적용하여 다시 한번 서양미술로 접목시킨 것이라는 점인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 고흐의 그림들도 이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 있답니다. 

Van Gogh/ Courtesan / 반 고흐 /코티즌 

반 고흐와 모네는 대표적으로 자포니즘을 사랑한 화가라고 잘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모네는 자신의 집을 이 자포니즘을 담은 벽화로 장식하거나 일본풍의 장식품을 수집하기도 했답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는 일본의 판화에 매료되어 여러 가지 작품을 수집하기도 했고 이 반 고흐풍의 느낌으로 코티즌이라는 그림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코티즌은 지금의 말로는 창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 일본의 게이샤를 보고 그린게 아닐까 싶네요.

 

사실 서양에서는 한국의 문화보다는 일본이 더 잘 알려진 이유도 이 19세기에 유행했던 자포니즘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점은 참 안타까운 것 같아요. 한국도 19세기에 활발하게 무역을 하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것들을 알리는 기회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알려진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반 고흐가 이 자포니즘에 빠졌던 당시에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이동을 했는데 이는, 일본에 가고 싶어서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답니다. 또한 이 자포니즘이 더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이 19세기 당시에는 예술가들의 활발한 색다른 것을 탐색하는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자포니즘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19세기는 너무나 다양하고 크고 작은 미술사조가 탄생했던 과도기였기 때문에 20세기에 현대적인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인데요. 19세기를 보면 산업화로 인한 빠른 발달이 있었는데 이 예술가들은 이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이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게 컸답니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이 다양한 예술 양식을 만들어 내기도 했죠.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걸 보니 정말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네요 ㅎㅎ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다음엔 20세기 예술 양식을 포스팅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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